《정녕 친어머니의 모습이였다》

내가 평양시 보통강구역 경흥동에서 살고있는 리선애어머니를 알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전 어느한 탁구장에서였다.

그때 24살이였던 나는 훈련의 휴식참에 땀을 들이고있었는데 낯모를 한 녀인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녀인은 고무줄로 탁구채를 고정시킨 나의 절단된 팔을 매만지면서 두팔이 없이 탁구를 치는 모습을 난생처음 봤다고 눈물젖은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첫 대면에 마음이 끌리여 나는 그에게 지나간 나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남포시의 평범한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나는 12살때 뜻밖의 사고로 량측전박이 절단되였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나의 얼굴에 단 한점의 그늘이 질세라 다른 아이들과 꼭같이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펴도록 해주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조선장애자체육협회에서 희망대로 탁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두손이 없는 나에게 있어서 탁구훈련은 힘에 부치는 일이였으나 나는 훈련에 열중하여 여러 차례의 국내경기와 국제경기에 참가하여 우승의 영예를 떨치고 공화국기를 세계의 하늘가에 휘날렸다.

그때의 그 긍지감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그 녀인은 눈물을 흘리며 《영록아, 너는 두팔이 있는 사람보다도 나라를 위해 더 큰 공을 세웠구나. 오늘부터 난 너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되고싶구나.》라고 말하였다.

그날부터 선애어머니는 나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걸음걸음 돌봐주었다.

자기 집에 데려다 생일상도 푸짐히 차려주고 경기를 치르려면 영양이 따라서야 한다며 영양식품도 성의껏 마련해주었다.

해마다 장애자 및 애호가체육경기대회 탁구경기가 진행될 때마다 나를 따라다니며 응원도 해주었다.

제대되여 집에 오는 아들 명성이에게 주려던 멋진 새 양복을 나에게 입혀준것을 비롯하여 나를 보란듯이 내세워주기 위해 기울이는 선애어머니의 사랑에는 끝이 없었다.

더우기 내가 우리 청년들의 최고영예상인 김일성청년영예상을 수여받던 날 선애어머니는 나를 그러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기쁨과 격정이 어린 그의 모습에서 나는 친어머니를 보는것같았다.

조선장애자체육협회 김영록

장애어린이들의 6.1국제아동절 기념모임 진행   [2025-06-26]

밝고 명랑한 모습들   [2025-06-26]

어머니당의 인민적시책속에서 희망과 재능을 꽃피워가는 장애자들   [2025-06-26]

장애자의 날 기념모임 진행   [2025-06-26]

조선장애자예술협회 예술소조공연 진행   [2025-06-26]

보통교육의 질적수준을 제고하기 위한 사업에 주력   [2025-06-26]

다양한 점글자도서 출판   [2025-06-26]

후대들을 위해 바쳐지는 마음   [2025-06-26]

선진적인 훈련방법을 도입하여   [2025-06-26]

경제선동활동 활발히 전개   [2025-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