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서원

   소현서원은 원래 조선봉건왕조 중엽의 유학자 리이(1536-1584)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저술사업을 하던 건물인데 후에 서원으로 꾸린것이다.

   소현서원은 석담천 맑은 물이 아홉굽이(구곡)를 에돌아내리면서 돌못(석담)을 이루는 천하절승으로 이름난 명승지 석담구곡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명소인 다섯번째굽이의 《은병》에 자리잡고있다.

   네모나게 둘러막은 담장안이 다시 앞뒤 두구역으로 갈라져있는데 앞구역에 강당이 있고 뒤구역에 사당이 있으며 담장 바깥 앞쪽에는 청계당(서쪽)과 요금정(동쪽)을 비롯한 여러 건물들이 있다.

   처음에 리이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집인 청계당을 1575년에 짓고 강당인 은병정사를 1578년에 지었으며 리이가 사망한 후에는 그를 비롯한 이름난 유학자들을 제사지내기 위한 사당을 세웠다.

   이와 함께 강당앞의 삼문과 기타 여러 부속건물들이 세워져 비로소 서원으로서의 모습을 다 갖추게 되여 석담서원이라고 이름지어 부르게 되였으며 1616년에는 《소현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아 고쳐부르게 되였다.

   은병정사(강당)는 돌로 쌓은 높이 1m가량의 축대우에 세운 정면 4간(9.95m), 측면 3간(6.5m)의 홑처마합각집이다.

   강당뒤의 한단 더 높은곳에 세운 사당은 정면 3간(7.63m), 측면 3간(5.82m)의 겹처마배집이다. 사당앞에는 명필 김정희의 글씨로 새긴 비우에 지은 비각인 《천조각》이 있다.

   요금정은 당시 명필이며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났던 리이의 누이동생 옥산이 오빠에게 거문고를 들려주던곳이라고 전해지는 루정이다. 한변의 길이가 3m의 한간짜리 정방형의 다락집이다.

   청계당은 정면 4간(9.95m), 측면 3간(6.5m)의 홑처마합각집이다. 집의 규모와 구조가 강당과 거의 같다.

   청계당 건너편에는 리이가 살던 집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로 이루어진 《가묘》가 있다.

   소현서원은 오죽헌, 도산서원, 숭양서원 등과 함께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서원으로서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지방사설교육시설의 모습과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