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일

   주체81(1992)년 9월 어느날 개성시 급양관리소에서 일하고있다는 한 늙은이가 해당 기관에 찾아와 자기는 왕건가문의 후손이라고 소개하고나서 가지고온 왕씨족보를 조심히 내놓았다.

   족보는 한가문의 래력, 다시말하여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대대로 내려오는 자기 집안의 혈통관계를 체계적으로 기록해놓은 책으로서 일명 계보라고도 하였다. 족보에는 일반적으로 시조로부터 같은 항렬에 속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자, 호, 시호 등 여러가지 별명과 생년월일, 사망날자, 간단한 경력, 벼슬이름은 물론 무덤위치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적혀있다. 그러므로 족보만 보아도 그 집안의 래력과 경력에 대하여 인차 알아볼수 있다.

   지난 시기 일반사람들의 족보는 해당 문중에서, 왕족들의 족보는 종부시라고 하는 중앙관청에서 맡아 작성하였다.

   늙은이는 오랜 세월 비밀로 간직해온 사연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1392년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왕위에 오른 리성계의 왕씨가문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살륙만행을 피하여 왕건가문의 족보를 가진 왕족이 구사일생으로 송도장안을 탈출하였다. 그때로부터 그들은 변성명을 하고 깊은 산골에 숨어살면서 가문의 족보만은 대를 이어가며 목숨으로 지켜왔다. 그사이 여러차례 족보를 보충하여 간행하기도 하였다. 늙은이가 내놓은 족보도 1798년에 처음으로 편찬간행하였다가 1850년과 1881년에 다시 간행하였으며 주체7(1918)년에 전면적으로 수정보충하여 만든것이였다.

   나라가 해방되고 전쟁후 공화국의 품에 안긴 다음에도 그들은 봉건왕의 가문이라는 과거를 내놓기 저어하면서 본색을 숨기고 살아왔다.

   그러던 주체81(1992)년 5월초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고령의 몸으로 왕건왕릉을 찾으시고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국가의 창건자인 왕건의 무덤을 크게 잘 꾸려주자고 하셨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며칠밤을 눈물로 지새우던 그들은 마침내 수백년을 고이 간직해내려오던 왕씨가문족보와 왕의 옥새를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올리기로 결심하였다. 이렇게 되여 늙은이가 해당 기관을 찾아와 그 족보를 내놓게 되였던것이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시대가 좋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 다 있다고 하시며 그들이 올린 왕씨족보와 왕의 옥새를 보아주시였다.

   개성왕씨족보를 한장한장 주의깊게 보아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족보에 있는 왕건의 초상을 보시고는 그가 아주 잘 생겼다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개성왕씨족보와 왕건이 쓰던 옥새를 잘 보관하도록 하시고 그것을 내놓은 왕건후손들에게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개성왕씨족보의 출현, 참으로 그것은 민족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문화유산을 더없이 귀중히 여기시고 그것을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워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덕망이 낳은 전설같은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