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발생은 고려시기인 10세기에 번창한 불교의례와 관련되여 있었다고 한다.
국수는 흰쌀생산이 매우 제한되여 있고 잡곡이 위주였던 당시의 조건에서 잡곡을 특색있게 가공하기 위한 기발한 착상이였다. 국수는 만들기도 간단하고 부식물도 많이 들지 않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대접할수 있었다.
국수에 대한 자료를 고려말기에 처음 나타난다. 《룡비어천가》에는 최영이 손님을 대접할때마다 국수와 반찬을 분담하여 준비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해동역사》에는 고려때 나라안에 밀이 나지 앟아 국수값이 비싸므로 크게 차리는 잔치가 아니면 쓰지 못하게 하였다고 씌여 있다.
국수는 지방적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북쪽지방에서는 메밀가루, 감자농마가루, 강냉이가루로 만든 국수를, 남쪽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음력 정월 14일 점심이면 국수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특색 있는 민족음식인 국수는 일찌기 이웃나라들에도 알려져 명성을 떨치였는데 문헌기록에 의하면 17세기 전반기에 랭면이 일본에 전해져 높이 찬양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