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은 늦은 봄이면 시원한 록두묵채를 즐겨 만들어먹군 하였다.
록두묵채의 기본음식감인 록두묵은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묵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던것이였다.
황해도사람들은 여름철에 꼭 록두묵을 해먹는 풍습이 있었으며 묵을 쓸때 나오는 물(묵물)을 미음대용으로 허약한 사람들과 위병환자들을 위한 식사에 많이 리용하였다. 강원도지방에서는 여러가지 낟알로 묵을 만들어먹었는데 그중에서도 록두묵이 특별히 맛이 좋아 명절이나 반가운 손님이 왔을때 별식으로 만들어먹었다.
우리 인민들은 록두묵에 양념장을 쳐서 그대로 먹기도 하였지만 묵과 여러가지 가공한 보조음식감들을 섞어 만든 음식을 더 좋아하였으며 이것을 록두묵채라고 하면서 봄철 에 많이 만들어먹었다.
록두묵채는 탕평채, 청포채, 묵초나물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록두묵채가 탕평채라고 불리우게 된데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봉건정부는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느 한 당파에도 쏠리지 않고 매 당파들을 공정하게 대한다는 이른바 《탕평책》이라는 정책을 내놓고 리행하군 하였다.
실례로 영조왕이 1727년에 지시를 내려 로론과 소론의 두 당파에서 고르게 사람을 등용하도록 한것은 당파싸움을 없애보려 한 탕평책이였다.
어느때인가 부패무능한 량반통치배들이 권력다툼을 위한 파벌싸움을 벌리자 일부 량반들이 한자리에 모여 탕평책을 론의하였는데 거기에 차린 음식상에 맛있는 록두묵 채가 올라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후 이 음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탕평책을 론의하던 장소에 올랐던 음식이라는데 로부터 탕평채라고 불렀다는것이다.
그리고 록두묵채를 청포채라고 하게 된것은 묵을 한자로 《포》라고 하고 노란 록두로 만든 묵을 《황포》, 푸른 록두로 만든것을 《청포》라고 불렀는데 록두묵채는 주로 푸른 록두묵을 가지고 만들었기때문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