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그랑팥죽은 오랜 세월 우리 인민들의 동지날 특식으로 되여왔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동지라고 하면 의례히 오그랑팥죽을 생각하며 또 쑤어먹고 있다.
동지팥죽의 유래에 대하여서는 일부 미신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한해가 시작되는 날로, 큰명절로 여긴 동지날을 계기로 그해에 지어놓은 햇곡식가운데서 길하고 상서로운것으로 여기던 붉은 팥을 맛보려고 팥죽을 쑤어먹은것이 풍습으로 굳어졌다고 볼수 있다.
고려말의 시인 리색(1328~1392년)은 동지팥죽에 대하여 《동지엔 고을풍속/팥죽을 되게 끓여/차름차름 담으면/빛갈도 고을시고/꿀을 타서 후룩후룩/마셔나 보오》라는 시를 남기였다.
동지팥죽은 여느 팥죽과는 달리 찹쌀가루로 새알만하게 동그랗게 빚은 오그랑이(알심 또는 새알심이라고도 함)을 두고 쑤었다. 동지팥죽을 흔히 오그랑팥죽이라고 하는것은 이때문이다.
오그랑팥죽을 쑬 때에는 다른것들보다 류달리 큰 오그랑이를 몇알 만들어넣군 하였는데 큰 오그랑이가 차례지는 아이에게는 복이 차례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팥죽을 그릇에 담을 때 큰 오그랑이가 아이들에게 고루 차례지게 하는데 관심을 돌리였다.
대부분 지방들에서는 더운 팥죽을 훌훌 불면서 먹기를 좋아하였지만 강원도에서는 팥죽을 그릇에 담아 살얼음이 질 정도로 차지도록 장독대에 올려놓았다가 뜨뜻한 온돌방에서 밤참으로 먹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오그랑팥죽을 동지날 해가 떠오르기전에 쑤어 먹었다.
오그랑팥죽은 좋은 음식이라 하여 이웃끼리 서로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