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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미역을 비롯한 바다나물의 식용가치를 제일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따서 식생활에 리용한것은 조선사람들이였다.
여러가지 바다나물가운데서 우리 인민의 식생활에 가장 많이 리용된것은 미역이다. 미역은 우리 나라의 전반적연해에 널리 분포되여있는데 특히 동해안일대와 서해의 옹진수역, 남해의 제주도수역에 많다.
옛 기록인 《해동역사》에는 《미역은 다른 나라에는 없으나 오직 동방에는 이르는 곳마다에 있으며 제주도에서 제일 많이 생산된다. 그곳 주민들은 배를 타고 다니면서 이것을 팔아 부자가 된다.》라고 씌여있다.
미역은 2~3월경에 딴것이 만문하여 먹기 좋다. 벌써 5월만 지나면 쇠여서 맛이 없다. 18세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에서는 미역양식과 채취가 급격히 활성화되였다. 이 시기 미역따기는 잠수어로에 많이 의존하였는데 어촌마다 일정한 계률에 의해 미역따기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주도의 미역따기 풍습이 이채를 띠였다. 
제주도에서는 다자란 미역을 일정한 기간 따내지 않고 둬두었다가 3월중순경에 날을 받아가지고 일제히 미역따기에 들어가군 하였다.
미역따기날이 오면 해녀생활에서 은퇴하였던 나이많은 녀인들도 바다가로 나왔으며 
가족들과 이웃들까지 해녀들의 잠수작업을 돕고 따들인 미역을 운반하느라 바다가는 말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군 하였다. 
제주도 해안부락에 살고있는 부녀자들은 어려서부터 바다와 친숙해진탓으로 거의 모두가 잠수의 능수들이였는데 보통 10m 깊이에까지 잠수하여 2~3분씩 이상씩 견디군 하였다.
간편하게 몸을 가리우고 미역망태와 짧은 낫을 든 해녀들이 입수신호가 떨어지기 바쁘게 일제히 바다에 뛰여드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이였다.
그들은 미역밭까지 헤염쳐나가 서로 휘파람으로 신호하면서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하면서 미역을 따내였다. 따낸 미역은 산더미를 이루었는데 가족별로 묶어 집집마다 날라들였다. 미역으로는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먹을수 있다.
그 가운데서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음식은 미역국이다. 해안지방들에서는 명절날이나 생일날이면 반드시 미역국을 끓여먹군 하였는데 일부 지방들에서는 미역국을 설날에 꼭 만들어먹는 설음식의 하나로 여기기도 하였다.
미역국은 원래부터 큰 대접에 넘쳐날 정도로 담았으며 곱배기를 하는것이 관습으로 되여있었다.
특히 미역국은 산모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음식으로 일러왔는데 임신부가 있는 가정들에서는 해산을 앞두고 미역을 꼭 장만해두는 풍습이 있었다.
미역에는 인체에 극히 필요한 광물질이 아주 많은데 이것은 거의 완전히 체내에 흡수된다. 그러므로 미역은 인체에 필요한 고아물질을 공급해주는 중요원천의 하나로 된다. 산후에 미역국을 많이 먹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마도 우리 선조들이 오래전부터 식용으로 리용하여 온 바다나물이다. 발해에서는 다시마를 남해(오늘의 함경남북도앞바다)에서 많이 생산하였으며 후기신라사람들은 잠수하여 채취한 다시마를 중국에 수출하였다고 옛기록은 전하고 있다. 
다시마는 우리 나라 전반적연안에 분포되여 있는데 함경북도, 강원도, 황해남도연해에 특별히 많다.
다시마로는 국, 나물, 랭채, 자반, 무침, 튀기, 차 등을 만들어먹을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