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풍습

   본래 우리 나라의 혼례는 건전하고 간소한것이였다.

   옛날 력사책인 《북사》에 의하면 고구려사람들의 혼례에 대하여 《남녀가 서로 좋아하면 그들을 곧 결혼시킨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사람들은 복잡한 격식이 없이 간소한 방법으로 혼례를 치르었다.

   혼례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까다로운 격식과 절차들이 생기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말까지 혼례에서 지켜진 의식과 절차는 선보기, 약혼, 날받이, 납페(례장교환), 결혼식 등이였다.

   혼례의 기본의식은 결혼식이였다.

   결혼식은 새서방이 먼저 새색시집에 가서 장가를 든 다음에 새색시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새서방잔치는 전안, 교배, 큰상받기 절차로 하였다.

   전안례는 새서방이 가지고 간 기러기를 가시어머니에게 드리는 례의이며 교배례는 새서방과 새색시가 청실, 홍실을 늘인 조롱박잔에 술을 부어서 마시는 례이다.

   다음 신랑은 큰상을 받는다.

   새색시잔치는 새색시가 시집에 가서 하는 잔치를 말하는데 큰상받기와 사당배례(시집조상에게 인사하는 례), 구고례(새색시가 시부모에게 인사하는 의식)의 절차로 하였다.

   새서방잔치나 새색시잔치에는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들에서도 참가하였는데 그들은 자기의 성의를 부조를 통하여 표시하였다.

 

   결혼식날 혼례옷차림

   우리 조상들은 혼례옷차림으로는 남자는 사모관대하고 녀자는 칠보단장하는것이 일반적관례였다.

   남자의 혼례옷차림으로는 이밖에 바지, 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것은 사모관대를 갖출수 없는 형편의 가정들에서 하는것이였다.

   녀자의 혼례옷차림으로는 칠보단장이 기본이였다.

   칠보단장이란 보통 칠보족두리에 털배자, 당의, 라삼, 활옷, 혹은 원삼과 같은 례복을 받쳐입은 신부의 옷차림을 말한다.

   칠보란 말은 일곱가지의 보배 즉 금, 은, 유리, 차거, 마노, 호박, 산호를 말하며 이러한 보배를 장식한 족두리나 화관을 《칠보족두리》, 《칠보화관》이라고 하였다.

   혼례옷차림은 지방에 따라 약간한 차이가 있었다.

   평양과 평안도지방의 신부옷차림은 다홍치마에 초록색저고리를 입고 그우에 털배자를 걸치였으며 귀걸이를 달고 은노리개를 허리에 찬것이였다.

   함경도지방의 혼례옷차림은 다홍치마에 노란색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그 우에 라삼이나 활옷을 입었다.

   중부지방의 혼례옷차림은 노란색 혹은 초록색 삼회장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그 우에 활옷을 입는것이였다.

   개성지방의 혼례옷차림은 연록색회장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은 다음 활옷을 입는다.

   남쪽지방의 혼례옷차림은 초록색 혹은 노란 회장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고 그 우에 원삼이나 당의를 입었다.

   이상의 혼례옷차림은 지방에 따라 약간한 차이는 있었으나 겉옷에서 차이가 있을뿐 머리에 족두리나 화관을 쓰고 당혜(신발)를 신는것은 공통적이다.

조선민속박물관 학술연구원 박사 리순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