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개성의 력사유적들
2013년 6월 세계유산위원회 제37차회의에서는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였던 고려의 력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12개의 력사유적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천여년의 도시력사를 가지고있는 개성에 보존되여있는 여러 유적은 오늘도 고려의 발전면모를 다각적으로 실감있게 그려볼수 있게 한다.
왕건왕릉, 7릉떼, 명릉떼, 경효왕릉
개성시주변의 산지들에 축조된 고려시기의 대표적인 왕이나 왕족들의 무덤이다.
왕건왕릉은 고려의 건국시조왕의 무덤으로서 우리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력사유적의 하나이다.
왕건왕릉은 199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개건되였다.
7릉떼는 고려중기와 그 이후에 축조된 7기의 무덤으로, 명릉떼는 고려 29대왕인 현효(충목)왕의 릉을 비롯하여 14세기의것으로 인정되는 3기의 무덤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경효왕릉은 고려 31대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이 릉은 고려왕릉들가운데서 규모와 건축술이 가장 뛰여날뿐아니라 시설물들이 원상대로 잘 남아있는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의 석조건축유산들가운데서 손꼽히는 유적으로 되고있다.
만월대
고려의 왕궁이 자리잡고있던 곳으로서 송악산남쪽기슭에 위치하고있다.
중심건축군의 앞부분에는 높이가 7.8m나 되는 축대우로 오르는 4렬의 대계단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이것만 보아도 고려왕궁의 위엄있던 모습을 능히 그려볼수 있다.
고려성균관
고려성균관은 고려가 운영한 오늘의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다.
당시 여기서는 유교경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정치, 법, 수학, 서예 등을 가르쳤는데 학생수는 수십명 최고 수백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현재 십여동의 건물들이 강당구역과 사당구역, 부속건물구역으로 나뉘여져있다. 유적의 서쪽에는 고려시기의 탑, 비, 돌등, 부도 등이 있다.
개성성과 개성남대문
개성성은 도시를 둘러싼 높고낮은 산과 구릉들을 이으며 축조된 평산성형식의 수도성이였다.
개성성은 궁성과 황성, 외성, 내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각이한 년대에 축조되였다.
내성의 남문인 개성남대문은 현재 시중심부의 네거리한복판에 서있다. 개성의 상징마냥 서있는 이 문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폭격에 문루가 불탄것을 전후에 원상대로 복구하였다. 지금 문루에는 우리 나라의 5대 명종의 하나인 연복사종이 걸려있다.
개성첨성대
개성첨성대는 만월대의 서쪽곁에 자리잡은 천문기상관측시설인데 현재 축대만이 보존되여있다. 《고려사》의 기록들에 비추어볼 때 이곳에서 천체의 움직임과 특이한 자연현상들을 관측하고 시간을 확정하며 강우량과 날씨를 예보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숭양서원
원래 유명한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살던 집이였는데 16세기후반기부터 사립유교교육기관인 서원으로 개조, 리용되였다. 우리 나라에서 이른시기에 속하는 서원유적의 하나이다.
선죽교와 표충비
선죽교는 원래 선지교라고 불리우던 크지 않은 돌다리이다.
정몽주가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키다가 리성계일당에 의해 피살된 후 그가 죽은 자리에서 참대가 돋아났다고 하여 선죽교라고 불렀다.
표충비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정몽주의 충절을 찬양하여 세운 비석들인데 비각안에 안치되여있다. 거부기를 형상한 받침돌과 검은 대리석으로 만든 비몸, 룡조각이 새겨진 지붕모양의 비머리 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당시의 높은 석조술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