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태여난 민속무용 《돈돌라리》

   우리 인민의 락천적인 생활감정을 그대로 반영하고있는 민속무용 《돈돌라리》에도 민족유산을 그 누구보다도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뜨거운 손길이 어려있다.

   주체 64(1975)년 12월 하순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대극장에서 함경남도예술단에서 준비한 민속무용 《돈돌라리》를 보아주시였다.

   원래 민속무용 《돈돌라리》는 1930년대초에 북청지방에서 창작되여 여러 고장들에 널리 보급되여온 민속무용의 하나이다. 춤은 일제식민지통치의 그 암담한 시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기어이 오고야말 조국해방의 동틀 날(《돈돌라리》의 어원)을 그리는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을 경쾌한 노래선률과 춤가락에 담아 진실하게 반영한것으로 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일제의 악랄한 민족문화말살정책과 해방후 민족문화유산에 대한 일부 일군들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하여 춤은 점차 빛을 잃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가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회주의문화는 빈터우에서가 아니라 지난날의 문화유산가운데서 진보적이며 인민적인것을 사회주의현실에 맞게 계승발전시키는 기초우에서 창조된다고 하시면서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 널리 전해오는 민속무용들을 발굴수집하여 새롭게 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동해안지방의 《돈돌라리》춤 같은것을 발굴하여 현대의 미감에 맞게 잘 살려낼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며 함경남도예술단에 그 임무를 주시고 이날 몸소 보아주시였다.

   춤을 다 보아주신 그이께서는 민속무용형상에서 나타난 부족점과 수정방향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원래 《돈돌라리》춤은 손동작을 맞추어 추는 특색이 있는 춤인데 원래의 곡은 다 없애고 현대화된 곡에다 손동작을 맞추어 놓으니 흥취가 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돈돌라리》를 하자면 민속무용대로 해야지 원래의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현대화하면 누구도 그것을 보고 《돈돌라리》라고 하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현대적인 무용음악과 민족적인 무용동작을 혼탕시켰는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민속무용을 발굴하여 우리 인민의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킨다고 하여 민속무용의 고유한 특성까지 다 없애버려서는 안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의상도 민족적인 맛이 나게 고치고 본래의 곡과 춤가락도 살려 4인무로 완성하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해 3월에 있은 음악무용소품발표회에 다시 출품된 민속무용 《돈돌라리》를 또다시 보아주시고 음악은 지금대로 고착시키고 춤동작은 다시 연구하여 고치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돈돌라리》춤은 자기의 고유하고 특색있는 춤가락을 가지고있는데 지금은 그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안무가에게 어떤것이 춤의 원색춤가락인것 같은가고 물으시였다.

   안무가가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자 장군님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민속무용 《돈돌라리》에서는 손을 들었다내리며 어깨를 가지고 재간을 부리는것이 있었는데 오늘 출연한 무용 《돈돌라리》에서는 그런것이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북청지방에서 추던 《돈돌라리》춤을 특징짓는 가락이라고 하시면서 그 춤가락을 살려야 춤이 살아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안무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원색춤가락으로 춤의 장면들을 머리속으로 관통시켜보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춤의 특색이 더 확 살아나는것이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그 춤가락은 조선의 민속무용 《돈돌라리》에만 고유한것으로서 춤의 민족적색채와 률동을 명료하게 담은 이채로운 춤가락이였다.

   민족문화유산을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빛나는 예지와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영원히 사라질번 하였던 민속무용 《돈돌라리》는 주체예술의 화원에 새롭게 태여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