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신사임당과 그 유산
신사임당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이름있는 녀류화가이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글짓기, 그림그리기, 수놓이, 바느질 등을 다 잘하였다.
그가운데서도 그림을 뛰여나게 잘 그렸는데 어릴 때 벌써 안견의 그림을 본으로 하여 산수화와 포도를 잘 그려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냈으며 새와 물고기, 꽃과 풀, 나비와 벌, 메뚜기 등 자연에서 체험하게 되는 모든것을 화폭에 담았다.
당시 녀성들이 문밖출입도 마음대로 할수 없을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고있었던 실정에서 그의 그림소재는 집의 안뜰이나 뒤울안에서 볼수 있는것으로 한정되여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관심을 돌리지 않던 사물현상들을 세밀히 관찰하고 진실하게 그린것이 오히려 이채로왔으며 그것은 하나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대표적작품으로는 《쏘가리》, 《가지》, 《포도》 등을 들수 있다.
그가 그린 《가을풀》은 당대의 화단에는 물론 궁중에까지 널리 알려져 궁중자수의 밑그림으로, 궁중도자기의 문양원본으로 리용되였다. 특히 《쏘가리》는 그의 아들 률곡 리이의 글이 씌여져있어 더욱 가치있는것으로 되고있다.
《가지》에서 화가는 보들보들하고 길둥근 열매들이 달린 가지 두포기를 화폭에 담았는데 활짝 핀 패랭이꽃과 꽃을 찾아 날아드는 벌, 가지포기밑으로 기여가는 메뚜기 등을 함께 그려넣었다. 밝은색으로 윤이 나고 연한 가지의 질감을 잘 나타냈으며 거기에 붉게 핀 꽃과 벌레들을 같이 그림으로써 보다 생기있고 생활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그림에는 주위의 모든것을 무심히 대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찾아낼줄 안 화가의 안목과 창작태도, 개성적인 생활감정과 녀성다운 정서가 담겨져있다.
신사임당은 풀과 벌레들을 잘 그렸는데 그가 그림들을 해볕에 쬐려고 마당에 내다놓았을 때 닭들이 달려들어 쪼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이를 통해서도 솔거의 황룡사 소나무그림이야기와 더불어 화가의 뛰여난 재능을 알수 있다.
신사임당은 회화의 소재령역을 넓혔을뿐아니라 봉건통치배들의 취미가 반영된 묵화에 대치하여 선명하고 생동한 채색화를 그림으로써 사실주의적인 조선화를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또한 신사임당은 자녀들을 잘 가르친것으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녀성들의 지조를 찬양하는 시들도 많이 지었다고 한다.
봉건륜리도덕이 녀성들에게 집요하게 강요되고있던 당시의 환경에서 신사임당과 같은 재능있는 녀류화가, 시인이 배출된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